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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페이스의 #온라인퀴퍼 기획자, 김헵시바님 인터뷰

2020-08-27

지난 6월의 끝자락, 자긍심의 달을 그냥 보낼 수 없는 우리에게 단비 같았던 이벤트!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는 신선한 충격과 재미, 그리고 감동을 주었는데요.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의 기획자이자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기획단원이기도 하셨던 김헵시바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봅니다.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어퍼레이드는 2020.06.23부터 07.05까지 진행되었으며, 총 8만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닷페이스의 김헵시바님!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닷페이스 디자이너 김헵시바입니다. 팀원들은 저를 헵찌라고 불러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에서는 2년 동안 디자인팀에서 일을 했습니다.


김헵시바님의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캐릭터(제공: 닷페이스)


 

□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퍼(퀴어퍼레이드)를 처음 기획하셨는데요. 온라인 퀴퍼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기획의 출발은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고 싶은 저의 욕망이었습니다. 프라이드(Pride, 자긍심)의 달인 6월에 딱 맞춰 열릴 예정이었던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코로나로 인해 미뤄지게 된 게 너무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대표이자 동료 썸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6월인데 퀴퍼를 못 가는 게 말이 되냐. 온라인 퀴퍼라도 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더니, 썸머가 “나이키 에어맥스 줄 서기처럼? 우리가 하면 되지!”라고 말했어요. 상상을 실현으로 옮겨주는 동료의 힘이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썸머는 바로 닷페이스 슬랙 채널에 제안을 올려주었고, 그때부터 온라인 퀴퍼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조금 바빴던 시기라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걱정을 눌러준 게 이태원 코로나 사태였어요. 5월 초였던 당시 이태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일부 언론에서 퀴어 혐오적인 보도가 많이 나왔잖아요. 그때 저처럼 상처를 받았을 퀴어 친구들에 대한 걱정이 컸어요. 이럴 때일수록 퀴어들에게 서로 힘을 주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진행에 속도를 붙였어요.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제공: 닷페이스) 



□ 온라인 퀴퍼를 기획하시면서, 오프라인 퀴어퍼레이드의 어떤 점을 온라인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셨나요? 반대로, 온라인 퀴퍼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점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 오프라인 퀴퍼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살리려 노력했어요. ‘내 신념과 정체성을 주변에 표현하는 경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용기를 주고받는 경험’을 각각 인스타 개인 피드, 해시태그 피드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상했습니다. 또, 퀴퍼는 평소 입어보고 싶었지만 못 입었던 옷을 입는 할로윈 같은 날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아이템들을 준비해 퀴퍼에서 볼 수 있는 대담한 패션들을 구현하려 했습니다.


■ 온라인 퀴퍼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점은 오픈 이후 참여자들이 만들어주었는데요, 실제 퀴어퍼레이드에서는 위험해서 데려올 수 없는 반려동물과 함께 행진할 수 있다는 것! 고양이, 개, 고슴도치부터 거북이까지 다양한 반려동물들의 행진을 보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



□ 온라인 퀴퍼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 위에서 말했듯 썸머가 닷페이스 슬랙 채널에 제안을 해주었고, 동료 혬이 스투키 스튜디오와 협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어요, 그때 혬이 보여준 레퍼런스가 ‘제2회 월경 박람회'에 참여한 스투키의 작업이었어요. 각자의 월경 특징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웹 콘텐츠였습니다. 보자마자 ‘이 프로젝트는 스투키와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연락을 했고 스투키 스튜디오에서 UI/UX 디자인과 개발을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저는 기획과 캐릭터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을 담당했는데요, 처음에는 외계인 캐릭터를 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료 더기가 “이 이벤트의 성공 여부는 이미지의 매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사람 캐릭터를 써야 사람들이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할 것이고, 그게 참여의 동기가 될 거다. 사람들이 모여 행진을 하는 장면이어야 더 인상적이지 않겠느냐.”라는 피드백을 주었어요. 정확한 피드백이라 바로 다음 날 사람 캐릭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기본 사람 디자인을 잡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어요. 시각적 재미를 살리고 싶었는데 만든 이미지들이 모두 재미없게 느껴졌거든요. 그때 스투키에서 ‘사람들은 퀴퍼에서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을 거예요.’, ‘좀 더 RGB스러운 컬러를 써보는 건 어떨까요?’라는 결정적인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유니크한 차림새를 한 네온 컬러 캐릭터'라는 방향을 잡게 되었고, 그 이후로 빠른 속도로 디자인을 진행했습니다.

완성 후 오픈을 했는데요, 오픈을 했다고 완성이 아니더라고요. 참여자분들이 여러 피드백을 주셨거든요. 도움이 됐던 여러 피드백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전맹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를 추가해달라는 요청이었어요. 스투키에서도 문제에 크게 공감해 주셔서 바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개발자 태경 님은 접근성을 위해 대체 텍스트 외에도 더 구현해야 할 게 있다고 하셨지만(ex: 대체 텍스트와 함께 인스타그램 이미지를 올릴 수 있는 복사 기능) 오픈 기간이 짧아 모두 구현하지 못해 아쉬워하셨어요.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의견을 낼수록 온라인퀴퍼가 더 안전하고 열린 이벤트가 되는 것을 보며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제공: 닷페이스)



□ 온라인 퀴퍼를 제작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그 힘들었던 점을 어떻게 돌파하셨나요?


■ 힘든 점 보단 우려되는 것들이 있었는데요, 가장 큰 우려 사항은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퀴어 당사자들이 참여를 하기 어려우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퀴어 앨라이들도 참여를 모으려고 했어요. ‘Get Ready With Me’ 콘셉트를 적용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어요. 퀴어 이슈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해도 ‘재미있어 보인다!’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을 모으려고요. 참여 인원을 보면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기도 하지만, ‘아웃팅이 걱정되어 올리지 못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트위터에만 올렸다'라는 피드백을 받아 안타깝기도 했어요. 언젠가 그분들도 퀴퍼에서 꼭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제공: 닷페이스)



□ 온라인 퀴퍼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힘이 되었던 댓글 혹은 피드백이 있었나요?


■ 참여 하나하나가 다 힘이 되어서 하나만 꼽기는 어렵긴 해요. 지금 생각나는 피드백은 ‘그래. 퀴퍼가 없으면 여름이 아니지.’ 같은 반응들이었어요. 왜냐하면 퀴퍼를 그리워하는 게 저만이 아닐 거라는 기대가 있었거든요. 퀴퍼에 가면 ‘나와 같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이 행진 속 모습이 내가 원하는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사람들에게 그런 감정을 주고 싶었고 저도 그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온라인 퀴퍼를 열자마자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행진이 펼쳐진 거죠. 너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그동안 혼자 그렇게 외로워했을까. 앞으로 이런 일을 계속해도 되겠다.’ 저는 같은 세상을 꿈꾸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기회로 사랑의 힘을 더 믿게 된 것 같아요.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의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 의 피드(제공: 닷페이스)



□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일원으로도 활동하셨는데요! 오프라인 퀴어퍼레이드를 준비하는 것과 온라인 퀴퍼를 준비하는 것은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같았나요?


■ 처음 온라인 퀴퍼를 일로 소화해냈을 때는 오프라인 퀴퍼와 완전히 달랐어요. 오프라인 퀴퍼에서는 현수막, 포스터, 배너 같은 걸 디자인했다면 온라인 퀴퍼에서는 캐릭터, 의상을 디자인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작업 과정에서 해야 하는 고민은 비슷했어요. ‘이 슬로건을 썼을 때 배제되는 사람은 없을까?’, ‘이 이미지를 쓰면 퀴어들이 어떤 이미지로 보일까?’, ‘어떻게 하면 안전한 행사를 만들 수 있을까?’ 이전에 그런 고민을 했었던 덕분에 수월히 진행되었던 부분이 있었어요. 여전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부분들은 있지만요.



□ 마지막으로 온라인 퀴퍼 참여자, 그리고 서울퀴어문화축제 참여자 여러분께 메시지를 전해주세요!


■ 우리가 만나지 못한다 해서 우리의 프라이드와 연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오프라인으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이 있는데 그걸 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워요. 이를테면 잔뜩 신난 서로의 표정을 보며 눈을 맞추는 것, 같이 트럭의 노래에 맞춰 춤추는 것 같은 것들이요. 하지만 우리가 지난 온라인 퀴퍼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용기를 주고받는 경험을 했던 것처럼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도 나눌 수 있는 감정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감정들을 기대하면서 서울퀴어문화축제 온라인 부스도 열심히 준비할게요! 그리고 내년에 꼭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닷페이스의 협찬을 받아 티셔츠, 손깃발, 현수막 아이템을 통해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습니다.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의 서울퀴어문화축제 티셔츠(제공: 닷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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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퀴어퍼레이드의 서울퀴어문화축제 깃발(제공: 닷페이스)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의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수막(제공: 닷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