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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제17호_People] 글로우 키친 사장, 프라이빗 비치 팀장! 이중생활자 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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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우 키친 사장, 프라이빗 비치 팀장! 이중생활자 이든

 

이든님은 퀴어문화축제의 애프터파티 "프라이빗 비치 Private Beach"의 팀장이시면서, 글로우 키친을 운영하고 계신다. 한때 게이씬의 인기 그룹이었던 "스파이크"의 멤버이기도 하셨다.

이번 퀴어퍼레이드(7월 15일 서울광장)에서는 1번 차량에서 퍼레이드의 선두를 화려한 퍼포먼스로 장식할 예정이시다.



은석: 안녕하세요, 이든님! 이든님은 퀴어문화축제 파티팀("프라이빗 비치 Private Beach")의 팀장이기도 하고, 운영하고 계신 글로우 키친의 이름으로 후원해주기도 하십니다. 이든님과 퀴어문화축제가 어떻게 연을 맺었는지 알고 싶어요.


이든: 퀴어문화축제와 처음 연을 맺었던 때는 2013년 제14회 퀴어문화축제 때였어요. 그때 거의 전라의 모습으로 팸플릿 모델로 나섰죠. 그다음 해에는 스파이크가 우연한 계기로 퀴어퍼레이드의 선두차량(차량은 아니었고 리어카?)에 서게 되었죠. 머리에 생선 쓰고 냄비 쓰고, "까탈레나" 콘셉트였어요.

그런데 그때, 다들 아시다시피 혐오세력과 대전투가 있었잖아요. 맞닿아서 싸우게 됐는데 난리도 아니었거든. 그때 좀 무서웠어요. 그걸 겪으면서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대학생 때 학생운동하며 화염병 좀 던져 봤던 그 당시의 감정도 되살아나고, ‘잘 해봐야지!’란 생각이 들었죠.


스파이크가 그때도 애프터파티(이하 '파티')에서 공연했는데, 아쉬움이 많았어요. 퀴어퍼레이드의 준비에 비해서 파티는 여력이 없어서 그런지 딱히 준비된 것 없이 그냥 뒤풀이 정도로 진행이 되었는데, 대만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을 보면, 대형 퀴어 행사에는 파티가 –물론 앞의 행사와 긴밀한 협의가 있어야 되겠지만- 또 다른 대형 행사로 치러지는 거죠. 실질적으로는 그게 돈줄인 거예요. 앞의 행사들은 수익이 안 나기 때문에 파티로 돈을 많이 버는 거죠. 무대에 오르면서 생각했어요. '더 준비가 잘 된 파티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그다음 해에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으로 공식적으로 일을 하게 되었죠. 그 이후에 맡을 사람이 없어서(;;) 팀장이 되었고요.


은석: 다른 기획단원분들도 퀴어문화축제를 직접 겪은 뒤 더 좋은 행사가 되었음 하는 마음에서 기획단으로 오시더라고요.


이든: 그런 게 정말 있는 거 같아요. 예전엔 퀴어퍼레이드 끝나면 이반시티에 이상한 사람이 항상 글을 올리더라고요. 퀴어문화축제 현장의 사진들을 올리면서 그 옆에는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를 붙여놔서 퀴어문화축제VS샌프란시스코프라이드 형식으로 올리는 거예요. 한국 수준 낮은 거 보라고. 이걸 매년 하는 분이 계셨어요. 너무 화가 나는 거야. 외국의 큰 프라이드랑 비교하면서 우리 프라이드를 욕하면 어쩌라는 건지... 그게 저한테는 제 얼굴에 침 뱉기 같았거든. 그분은 퀴어문화축제의 발전을 위해서 본인의 노력이나 후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죠. 그런 점이 짜증났고.


은석: 그런 면에서 후원도 적극적으로 하시게 된 것이군요.


이든: 겸손의 말은 아니고 더 해야 하는데... 아직 하고 싶은 일(=돈 들어가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체면치레할 정도로 하는 거예요. 금액의 여부를 떠나서 저는 게이로서 게이씬을 위해 의미 있는 일들을 하고 싶거든요. 어떤 사람들에겐 게이라는 정체성이 1~2할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적어도 7할 이상으로 보고 있거든요. 내가 게이가 아니면 내가 세상에서 특별한 의미가 없더라고요. 저는 평범한 교사였어요. 그런데 제가 평범한 교사처럼 안 살고 특별하게 살아온 모든 게 다 게이-퀴어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게 주어진 게이-퀴어라는 운명이 저의 큰 자양분이고 제 삶의 큰 의미이기 때문에 게이씬을 위해 의미 있는 일들을 하고 싶은 거죠.

제가 처음 이쪽(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지칭할 때 쓰는 말)에 데뷔한 게 "컴투게더"라는 대학교 성소수자 모임의 회장을 맡으면서였어요. 그때도 동인련(동성애자인권연대. 현재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을 비롯한 많은 단체들이 있었는데 저에게는 그 단체들에서 비전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싫어했던 건 아니고, '어떻게 되겠구나' 보이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퀴어문화축제는 그 비전이 명확하게 보이더라고요.


은석: 확실히 퀴어문화축제의 규모가 커지고 이미지가 바뀌는 게 매해 눈에 띌 정도로 보이긴 하죠.


이든: 2013년 홍대에서 퀴어퍼레이드 할 때까지만 해도 되게 크게 치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작았죠. 그때도 이렇게까지 빨리 발전할 줄은 몰랐어요. 다른 단체들의 운동 방식과는 차별화되었고.


은석: 아무래도 퀴어문화축제가 인권운동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문화로 풀어나가는 행사이기 때문에, 이든님께서도 그런 지점에 매혹을 느끼신 것 같아요. 저는 문화가 커뮤니티와 인권운동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든님의 지난 활동들 또한 그런 발자취를 남기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커뮤니티와 인권운동 사이엔 온도차가 있지요. 특별히 보람됐던 점이나 어려웠던 점이 있으신가요?


이든: 제가 생각하는 퀴어문화축제를 통한 성소수자 인권운동에서의 비전이라는 건 프로세스가 명확한데, 전략적인 최종목표는 "커밍아웃"이에요. 저는 한국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게 별로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조심스럽지만-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들이 너무 소수라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아웃팅을 강제하는 건 아니지만요. 

미국의 사례만 봐도, 어떻게 금방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었는지를 활동가들에게 물어보면, 성소수자에 대해 무지하고 혐오했던 사람들도 내 지인 혹은 친구가 성소수자인 것을 알게 되면, 동성결혼 법제화에 반대하다가도 내 옆집에 사는 친한 이웃인 누구가 누구와 결혼하겠다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막겠느냐,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한국의 악플들을 보면 성소수자는 아주 특수한 장소에 서식하는 희귀생물인 거예요. 자신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제가 속해 있는 남고 동창 단체 카톡방이 있어요. 저는 거의 말을 안 하는 편인데, 주로 자기 애기 사진 올리는, 그런 아주 고지식한 카톡방이에요. 거기에서 목사인 친구가 홍준표의 동성애 혐오발언이 있었을 때 "군대 내에서의 동성애는 군기문란으로 처벌해야한다"는 얘기를 꺼냈고, 그것에 동조하는 폭력적인 혐오발언들이 오갔죠. 그런데 그 동창들 중에서 제가 성소수자인 걸 아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저를 의식해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네 그렇게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 우리 중에도 그런 친구가 있을 수 있는데 얼마나 상처가 되겠느냐"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정말 쥐죽은 듯 조용해지고 다들 말을 조심하는 거예요. 저는 가족, 회사에서도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 동창들은 본 지가 몇 년 된지라 애매해서 커밍아웃을 안 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들에게 내가 커밍아웃을 하고 퀴어문화축제에서도 활동한다, 그랬으면 이 친구들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았겠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나 우리나라는 외국의 성소수자들 보다 더 두려워하거든요. 조금이라도 아웃팅이 되는 것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당장 내 주변의 친구들만 봐도 그렇고요. 그런데 퀴어문화축제는, 자신의 성정체성, 성적 지향을 대낮에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행사잖아요. "커밍아웃을 하면 돌 맞아 죽을 것 같았는데, 멀쩡하구나!" 그리고 그때 느끼는 해방감... 커밍아웃은 막상 해보면 별 거 아니거든요. 버릇들이면 오히려 즐기는 사람도 있어요. 상대방의 난처한 반응들을. 주변에 퀴어문화축제를 통해서 최초의 커밍아웃의 경험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2015년 서울광장에서 처음 퀴어퍼레이드했을 때, 제가 마지막 차량에 올라가 있었거든요. 퍼레이드 마치고 서울광장으로 들어오는데, 웃기겠지만 제가 교회 집사라 그런지, 홍해를 건넌 모세의 기분이 이럴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즐거워하면서 광장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정말 뿌듯했어요. 그래서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의 커밍아웃에 대한 인식 변화, 그것을 이루기 위해 퀴어문화축제가 가장 좋은 마중물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정말 즐기러만 나와도 되는 게 퀴어문화축제의 매력인 것 같아요. 즐거운 퍼레이드와 파티, 영화제를 참여만 해도 스스로 자신에 대한 인식 변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매커니즘이 좋았어요.


은석: 커밍아웃 얘기가 나와서 질문하겠습니다. 스파이크가 2015년 퀴어문화축제 개막식 무대에서 커밍아웃하는 영상도 유튜브에 있는데요. 그 다음해에 마지막 무대를 갖고 은퇴선언을 하셨습니다. 은퇴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든: 늙어서 그래요. 이제 마흔인데 언제까지 옷 벗고 춤을 춰요... 요새 젊은 아이돌 그룹 춤 따라 추기도 힘들고.




은석: 스파이크를 처음 결성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이든: 그냥 술집에서 앤초비랑 섹날두랑 놀다가 디제이 준(킹준)이라는 분이 새로운 클럽을 여는데 그분을 위해 오프닝 공연을 해보자! 끼 맞는 친구들끼리 그 자리에서 만든 거였죠. 그 공연은 폭망이긴 했는데, 한 두곡 하다 보니 그게 팀이 돼서 삼 년 동안 한 거였죠. 그 전에 고고보이를 처음하게 된 건, 찬혁(저스틴)이의 권유로 하게 되었죠. 그때 저보고 이태원에 써킷이라는 클럽의 무대에 서보라고 했거든요.


은석: 써킷이라면, 제가 처음 갔던 게이클럽이네요.


이든: 어려서 좋겠다... 난 스파르타쿠스인데... 무튼, 그때 클럽에서 언더웨어 패션쇼를 하게 됐는데, 제가 춤 못 추는 건 아니까 몸만 좋으면 된다고 해서 끼로 한 번 했죠. 지금이야 늙고 병들어 아무도 안 쳐다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서른네 살이었거든요. 몸도 훨씬 좋아서,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요. 써킷에서 몇 번 무대에 섰어요.


은석: 그때부터 해방감, 즐거움이 느껴져서 계속 고고보이, 스파이크를 하시게 된 건가요?


이든: 고고보이와 스파이크는 정말 인권운동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인 유흥과 일탈을 위해 한 거였어요. 그땐 교사였는데, 교무실에 앉아 있으면 학생들보다 더 간절하게 창문 쳐다보면서 언제 끝나나, 기다렸어요. 집안도 따분한 교육자 집안이었고, 심지어 기독교 집안이었거든요.


은석: 가족에게 커밍아웃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든: 당연히 안 좋았죠. 어머니 손잡고 병원도 갔었어요. 아는 박사님이 정신과 의사인데, 치료할 수 있다면서. 웃겼던 게, 심리테스트처럼 문항에 답하는 검사가 있었는데, 검사결과가 내가 헤테로(이성애자)로 나왔다는 거야. 어머니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다행이라고 했지.


은석: 나는 여성에게 관심이 있다, 뭐 이런 문항이 있었나요?


이든: 그런 직접적인 문항이 있던 건 아니었고, '다음 중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처럼 거의 페이스북에나 유행할 것 같은 문항들이었어요. 그 검사결과에 내가 헤테로로 나왔다는 거죠. 이미 남자랑 볼 건 다 봤는데.

그 이후에 군대로 도망갔고 제대하고 나서는 별 말이 없어요.


은석: 이든님은 글로우 키친의 사장님이시기도 한데요. 처음에 계획했던 글로우 키친의 성격과 시간이 흐른 뒤 지금 글로우 키친의 성격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든: 처음엔 별 계획이 없었어요. 소주를 팔지 말지도 오픈하기 며칠 전에 우선 팔아보자, 결정한 거였고. (아마 안 팔았음 망했을 거예요.) 정말 끼로 만든 곳이었죠.

그런 건 있어요.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게이바를 가보면 일반(비성소수자)들도 와요. 게이프렌들리한 곳이지 게이 전용 업소는 아닌 거죠. 그리고 바 영업을 하면서 점심도 팔죠. 제가 꿈꾸는 모습이긴 했어요. 게이씬이라고 해봤자 제한된 풀인데, 일주일에 그 사람들이 늘 와서 파스타를 먹어줄 것도 아니고. 레스토랑은 바보다 운영비가 더 많이 들죠. 게이 전용 업소로만 운영하는 게 애초에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저는 호모포비아만 빼고는 다 올 수 있는, 그러면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숨기지는 않는 가게를 꿈꿨어요. 커밍아웃한 게이들이 운영하는 가게. 그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 콘셉트로는 안 되더라고요. 심지어 레즈비언 손님들이 오셔도 여자가 왔다고 욕하고 나가는 게이들도 많았죠. 이쪽(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지칭할 때 쓰는 단어) 손님들이 많이 줄긴 했죠.



은석: 커밍아웃한 게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 처음엔 주 고객층이 게이 커뮤니티였는데, 공간의 성격이 바뀌면서 본인의 생각 혹은 운영방침에서 바뀐 점이 있나요?


이든: 사업으로 운영을 하려면 아무리 좋은 뜻이더라도 지속성을 점검해봐야죠. 이거는 결국 수익을 내야하는 사업인 거고. 저도 여러 번 시도를 해봤어요. 특정 시간 이후에는 헤테로 손님을 받지 말자. 등등. 그런데 딱 예상대로 쉽게 되진 않더라고요. 지금도 저는 답을 찾지 못했어요.

올해 안에 익선동에 세 개의 레스토랑을 오픈할 거예요. 그 레스토랑들을 각각 시험적인 모델로 운영해보려 해요. 이쪽분들은 애인이랑 분위기내고 싶으면 이쪽 가게 잘 안 오거든요. 왜냐하면 어쨌든 일반 업소가 퀄리티가 훨씬 좋은 곳들이 많으니까. 요즘 게이들의 입지가 많이 밀려나고 있는 익선동의 가장 핫한 곳에 제가 업소를 만들어서 당당하게 레인보우 깃발을 꽂고 장사를 해보는 게 지금의 목표에요.


은석: 이든님이 바라는 퀴어문화축제 혹은 프라이빗 비치는 어떤 모습인지, 또 그것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이든: 아직도 정립이 안 됐어요.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정체성이 화합하는 파티가 있을 수 있는가,예요. 게이들은 파티 왔는데 여자들 너무 많아서 물 안 좋다 그러고 레즈비언들도 왔다가 일찍 가시고. 물론 그 중에는 '일 년에 한 번 이런 파티가 있어서 너무 좋아요'라고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이 계시긴 한데요. 부정적으로 우리 파티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그냥 재미없는 파티인 거예요. 정치적 감수성에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에겐 본인이 좋아하는 코드의 사람들과 공연만 있는 곳이 재밌는 파티죠. 순수한 재미만을 추구한다면 퀴어문화축제의 의도에서 멀리 벗어나게 되죠. 그런데 태생적으로 파티다 보니 정치적 올바름만 추구할 수 있느냐, 그건 또 파티랑은 안 어울리는 거예요. 그래서 예전엔 이태원/홍대 분리해서 파티를 한 적이 있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비판을 받고. 어느 쪽을 택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파티팀장으로서는 그런 일들을 겪었어요. 장소 섭외하러 가면 클럽씬에서 소위 운영진들이나 셀럽들이 무시하는 거예요. 당신이 하는 파티가 그게 무슨 파티냐면서. 저는 게이니까, 게이씬에서 핫하다고 평가 받는 파티를 저라고 못 만드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희가 정치적인 고려와 성평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파티의 얼개가 정말 딱 촌스럽고 퀄리티가 낮은 것으로 보이는 거죠. "그게 파티야~ 제대로 된 파티를 안 해봐서 모르네~" 대놓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럴 땐 속상하죠.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 잊지 않으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긴 해요. 다만, 그 시도가 단 한 번으로 매몰차게 평가되지 않고 어느 게 과연 좋은 건지 알아보는 과정으로 참여자분들께서 봐주셨으면 좋겠고요.


은석: 이든님은 퀴어문화축제 단체 카톡방에서 노년퀴어(황혼퀴어)라는 말을 만드셨죠. 노년퀴어가 너무 없어보여서 황혼퀴어도 만들었다고 하셨는데...(ㅎㅎ) 지금은 아니지만, 노년의 본인의 모습은 어떠했으면 좋겠어요?


이든: 백년해로한 애인이 있음 좋겠는데 이미 거기서 저는 탈락이긴 하네요. 노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게이가 되고 싶어요. 특정 나이가 되면 종로/이태원을 떠나야만 하고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늙어서 주책이라 욕먹잖아요.

작년 샌프란시스코 SM 페티쉬 퍼레이드에 갔어요. 노인분들이 SM 복장, 도구 갖추고 열심히 참여하시는 거예요. 되게 좋아 보였어요. 나이가 든다고 해서 자신의 욕망이 줄어드는 게 아닌데. 우리는 60~70대가 되면 집에서 우아하게 붓글씨 쓰고 서예하고 난치고 이래야 아름다운 노인이고 클럽 가서 놀면 주책바가지라고 욕먹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저의 욕망이 달라지는 게 있고, 가령 성욕은 예전같이 않을 테고, 당연히 제가 갖는 관심사도 달라지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싶진 않아요. 저는 여전히 이든일 테니까요. 제가 원하는 걸 나이 때문에 안 하고 싶진 않아요.


은석: 뜬금없는 질문이긴 한데요, 퀴어문화축제 캐릭터를 고라니로 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신 적이 있어요. 왜 그렇게 고라니를 좋아하시나요?


이든: 저는 괜히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 말고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동물이 사랑 받았으면 좋겠어요. 게다가 고라니를 관심 갖고 보면 볼수록 우리 퀴어들과 너무 맞아 떨어지는 거예요.


은석: 어떤 점이요...?


이든: 우선, 유해동물로 지정되어 사람들의 핍박을 받는 처량한 신세죠.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 1급인 거예요. 개체수가 한국이랑 중국에 거의 모여 있고, 중국에서도 만 마리도 안 남아서 긴급 보호종으로 지정되었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싫어하잖아요. 세계적인 성평등의 바람 속에서도 한국에서만 성소수자가 보수 개신교 집단에게 탄압 받고 있는데, 고라니를 보니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고라니에 대해 악플을 다는 사람들을 보면 '귀여워 보여도 울음소리 한 번 들으면 정나미 뚝 떨어질걸' 이렇게 악플을 달던데, 고라니 울음소리가 특이하긴 하지만 자기네들끼리는 아름다운 울음소리이거든요. 그걸 인간의 기준으로 듣기 싫다, 그렇기 때문에 유해종이다 평가를 하는 건 퀴어문화축제 때 당당하게 내 몸을 드러냈더니 '더러운 호모들 이래서 없애야 한다' 이렇게 악플 다는 사람들이랑 맥락이 비슷한 거예요.

고라니는 뿔 대신에 송곳니가 있잖아요. 송곳니가 있어서 징그럽다는 말도 말이 안 되죠. 고라니의 자연스러운 생김새를 보고 그렇게 판단하면 안 되는 거예요. 왜 꼭 뿔이 있어야 돼? 송곳니가 있음 왜 안 돼? 왜 남자는 여자랑 결혼해서 아기 낳고 살아야 돼?


은석: 생각 보다 깊은 이유가 있어, 고라니 영업에 당한 듯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개인적인 소망을 말씀해주세요.


이든: 제가 친구들과 쉐어하우스를 짓고 있어요. "팔선재(여덟 선녀들의 집)"이라는 곳인데, 이 프로젝트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러 계기가 있었지만 롤모델이 되고 싶기도 했어요.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는 게이 선배가 되자. 게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가정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불안감이 있는 것 같아요. 백년해로하는 애인 만나서 잘 살 수도 있지만 모든 게이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팔선재를 만드는 게 제 꿈이었는데 좋은 기회에 좀 더 이른 나이에 실현을 하고 있죠. 주변에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는데, 그중에도 또 이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게이 여덟명이서 집을 짓는다고? 차라리 고목나무에 새싹이 돋길 바라지, 그게 되겠니?'

친구 생일파티에 갔는데 거기에서 모르는 무리들이 모여서 한 얘기였어요. 이것들아, 두고 봐라. 내가 으리으리하게 지어서 초청해주마, 그랬는데 너무 힘들어요(ㅠㅠ). 구성원의 문제가 아니라, 집을 짓는다는 행위 자체가 너무 힘든 거죠.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살 생각하면 이제 막 결혼하는 사람들처럼 설레요. 제 입장에선 가족을 정한 거고, 그래도 50까지는 살고 싶은데,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계획한 사업들이 뜻한 바대로 잘 되면 좋겠고요.


 

인터뷰어 | 양은석